그의 스투시, 뉴진스, 그리고 짠내나는 K-직장 생존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우리 팀의 김 팀장님, 일 잘하고 카리스마도 있는데… 어딘가 모르게 짠하다.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닌데, 가끔씩 나의 항마력을 시험에 들게 한다. 회의 시간에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요즘 MZ들은 말이야~’를 시전할 때면, 나도 모르게 동공 지진이 일어난다.
그리고 확신했다. 아, 이 남자. 그 유명한 ‘영포티’가 확실합니다.
Check List ✔️ 우리 팀장님 '영포티' 지수 자가진단
한때는 X세대의 아이콘, 지금은 K-직장인의 애환을 상징하는 그 이름, 영포티. 우리 팀장님을 통해 그들의 세계를 살짝 엿보았다.
1. 패션: 로고는 나의 힘, 핏은 나의 슬픔
김 팀장님의 출근룩은 묘하다. 평일엔 나름 점잖은 셔츠를 입지만, 금요일 캐주얼 데이가 되면 그의 봉인된 자아가 폭발한다. 배 부분만 유독 팽팽해지는 스투시 로고 티셔츠, 무릎이 살짝 나온 회색 조거 팬츠, 그리고 발목을 훤히 드러낸 채 신은 나이키 덩크 로우. 그는 분명 20대 시절의 <무신사> 랭킹 1위 코디를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겠지만, 현실은 어쩐지 '아빠 어디가' 특집 같다. 주말에 등산 동호회에서 찍어 올린 인스타 사진 속, 얼굴만 한 고글과 얼굴보다 더 튀는 형광색 바람막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2. 언어: 뇌를 거치지 않는 MZ력
팀장님은 신조어에 강박이 있다. 얼마 전 보고서를 올리자 그는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오, 박 대리. 이번 보고서… 폼 미쳤다!” 그 순간, 팀원들 모두가 못 들은 척 모니터만 쳐다보던 그 정적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킹받네’, ‘어쩔티비’ 등 이미 한물간 유행어를 갓 배운 초등학생처럼 해맑게 사용할 때면, 차라리 시원하게 “나 때는 말이야!”를 외치던 옛날 부장님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3. 라이프스타일: 힙스터가 되고 싶은 K-부장님
팀장님의 플레이리스트는 걸그룹으로 가득하다. 2025년 9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점심시간이 끝나고 차에서 뉴진스의 ‘Hype Boy’를 빵빵하게 틀고 들어오는 그를 보면, 저 흥을 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회식 장소로는 ‘요즘 뜬다는’ 성수동의 핫플을 굳이 예약하고, 막걸리 대신 하이볼을 마셔야 한다고力說한다. 물론 그가 예약한 맛집은 이미 두 달 전에 유행이 끝난 곳이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린…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까.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럴까? (feat. 미워할 수 없는 짠함)
솔직히 처음엔 ‘젊은 척하는 꼰대’라며 욕도 했다. 하지만 팀장님을 오래 관찰하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어쩌면 K-직장의 마지막 ‘낀 세대’가 아닐까?
‘라떼’를 외치면 꼰대가 되고, 그렇다고 진짜 MZ처럼 행동할 수도 없는 그 어정쩡한 경계선 위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요즘 것들’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설픈 신조어와 힙한 패션은, 권위적인 상사가 되지 않으려는 그들의 처절한 노력이자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온 배를 가리지 못하는 로고 티셔츠는, 아직 마음만은 20대이고 싶은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테고.
To. 팀장님께… (그리고 전국의 영포티들에게)
팀장님, 사실 저희가 바라는 건 ‘힙한 상사’가 아니에요.
유행하는 옷과 신조어보다, 저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어른’의 여유가 훨씬 더 멋있어요. 어설프게 저희의 문화를 따라 하기보다, 팀장님만이 들려줄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시는 게 더 든든하고요.
가끔은 로고 티셔츠 대신, 팀장님 몸에 근사하게 잘 맞는 셔츠를 입고 와주세요. 뉴진스 노래를 따라 부르는 대신, “오늘 커피는 내가 살게”라는 클래식한 멘트가 저희에겐 훨씬 더 감동이랍니다.
물론, 다음 주 월요일 아침 팀장님이 또 “좋은 아침! 오늘 완전 킹받는 날씨네!”라고 말하며 들어오더라도, 저희는 아마 못 들은 척 웃어넘기겠죠.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K-상사, 영포티가 바로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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